[수원화성박물관] 유물자료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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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청화수복문합(白磁靑畵壽福紋盒)

'수(壽)', '복(福)' 문양이 새겨진 백자청화 합이다. 몸체와 뚜껑이 한 조를 이룬 그릇으로, 뚜껑의 윗면 중앙에 손잡이가 붙어 있다. 그릇의 겉면에는 '수(壽)', '복(福)' 문이 서로 대칭되게 청화로 시문되어 있고 뚜껑의 안쪽 바닥면의 2중 원 안에도 '수(壽)'자를 써서 부귀영화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전체의 비례감이 매우 좋고 기형이 안정되어 보이는 궁중용 그릇이다.

주흑칠호족반(朱黑漆虎足盤 )

정조시대 궁중에서 사용하던 주흑칠 호족반으로 상판의 테두리에 흑칠이 되어 있다. 호족반은 상판을 받치고 있는 다리의 어깨가 밖으로 구부러져 유연한 곡선을 이루며 발 끝이 밖으로 살짝 올라간 형태이다. 호랑이의 다리모양을 하여 굽은 선이 많고 조각 장식등으로 위용을 보여준다. 대궐용 수라상이나 궁궐 내 제례용 소반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봉수당진찬도>를 통해 정조의 배워 앞에 주칠 호족반이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원행을묘정리의궤』권4, 찬품조에는 자궁과 대전께 올리는 찬안은 흑칠 족반을 사용하여 음식을 올린다고 하였다.

찬도호주주례(纂圖互註周禮)

중국 주(周)나라 제도를 기록한 책으로 후대 중국과 우리나라 제도의 규범서가 되었다. 주공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주례』 앞에 도설(圖說)을 수록하고 주(註)를 붙여 조선에 1648년(인조 26) 목활자로 인출한 것이다. 표제는 '周禮'로 표기되어있다. 이 책 가운데 주례경도(周禮經圖)는 '좌조우사(左朝右社)와 '면조후시(面朝後市)'라는 도성조성의 기본이념을 그림으로 풀이하고 있다. 곧 도성을 조성할 때 궁궐 왼쪽에는 종묘를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궁궐 앞에는 조정을, 뒤에는 시장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왕조도 1394년(태조 2) 한양에 도읍을 조성할 때 이를 참고하여 경복궁을 창건하면서 좌우에 종묘와 사직단을 배열했다.

경기36관지도(京畿三十六官地圖)

경기도 지역을 그린 채색지도로 서울과 4유수부 그리고 36개의 읍이 표시되어 있다. 유수부는 붉은 원형으로, 나머지 읍은 노란색 원형으로 표시하였고 산과 도로망이 잘 나타나있다. 특히 도시별로 성곽표시가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한양의 한양도성, 수원, 광주, 강화, 교동, 개성의 읍성과 그 주변에 산성이 있는 경우도 함께 표시하였다. 북한산성, 남한산성, 독산성, 대흥산성이 그려져 있어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의 읍성과 산성의 분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여지도(輿地圖)

조선후기에 활발히 제작되었던 목판본 지도책이다. 중국이 중심이 되는 천하도(天下圖), 중국도(中國圖), 동국대총(東國大摠), 유구국(琉球國), 일본국(日本國) 등과 조선팔도(朝鮮八圖)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하도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고, 동국대총도는 조선전국을 간략하게 그려 한 눈에 볼 수 있게 하였다. 조선팔도에 수록된 경기도지도에는 지역의 도시명과 대표적인 산이 그려져 있어 그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표현하였다. 수원은 서울에서 서남쪽으로 광교산 아래 남양과 진위군 사이에 위치한다.

기성도병(箕城圖屛)

평양성은 모란봉(牡丹峯)과 을밀대, 만수대(萬壽臺)의 산 능선을 북벽으로 이용하고 동쪽과 남쪽은 대동강을, 서쪽으로는 보통강을 끼고 축조된 평산성이다. 외곽둘레는 16km이며 내성(內城)을 합하면 23km이다. 평양성은 자연 방어선을 이루는 대동강과 보통강을 끼고 축조된 천연의 요새였다. 성곽구조는 궁성(宮城)인 내성, 행정구역인 중성(中城), 백성들이 거주하는 외성(外城), 내성을 보호하는 북성(北城)으로 구분된다. 각 지형과 건축물, 관아 등의 명칭이 묵서(墨書)되어 있다, 수원화성박물관 소장의 <기성도병>은 평안감사의 행렬이 없고 평양성 북성이 그려진 제1폭과 외성의 절반정도가 그려진 제8폭이 결락되어 있다.<기성도> 병풍그림은 18세기 이후 연폭 병풍 형식의 회화식 지도를 유행시키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특히 정조대에 화성성역을 완성하고 <화성전도>병풍을 그려 궁궐과 유수부, 성역에 참여한 관리들에게 분상하여 보급하게 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민보집설(民堡執說)

1867년(고종 4) 무신(武臣)인 신헌(申櫶, 1810~1884)이 간행한 민보(民堡)방위체제에 관한 책이다. 19세기 후반 이양선을 앞세운 서양의 침략에 대한 위기의식이 심화되자 연해변에 거주하는 유생들이 요해처에 산성을 쌓고 전쟁 시 농민들이 스스로를 지키는 민보방위론 시행을 주장했다. 이는 50여년 전인 1812년 정약용이 『민보의』에서 제시한 방안과 일치한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향촌의 군사편제, 민보의 선정과 축성방법, 가용 무기, 운영절차와 군량관리 등이며, 수성(守城) 관련서적들을 참고하였고 특히 『민보의』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세기 후반 국방과 사회안정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의식을 알 수 있는 사료이다.

유서(諭書)

정조가 수원화성 축성을 위해 대신에서부터 지방수령에게 이르기까지 축성방략에 대하여 물었는데 여러 신하들이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정조는 그 중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축성방략에 대해 "늙은 재상의 글을 보고 마음이 감동되었다."라고 할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74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원화성 축성(築城)을 위한 방략을 제시하는 등 수원유수로서 책임을 다한 채제공의 노고를 치하하며 신임유수와 교대한 뒤 조정으로 돌아올 것을 명령하는 유서를 내렸다.

기효신서(紀效新書)

명나라 장군 척계광(戚繼光, 1528~1588)이 절강현(浙江縣) 참장(參將)으로 있을 때 왜구를 소탕하기 위하여 무기와 전법을 새롭게 고안하여 편찬한 병서이다. 임진왜란 때 평양성 전투에서 조명연합군이 척계광의 전법으로 왜구를 물리치자 선조는 비밀리에 『기효신서(紀效新書)』를 연구하게 하였다. 이후 조선의 실정에 대입하여 『기효신서절요(紀效新書節要)』, 『무예제보(武藝諸譜)』등 다양한 병서들이 간행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기효신서』는 총 18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중 권13「수초편(守哨篇)」에 성제(城制)가 실려 있다. 치제(雉製), 현안제(懸眼製), 타구전제(垜口磚製), 중문대루제(重門大樓製), 옹성권문제(甕城券門製), 기성포제(騎城舖製), 우마장제(牛馬牆製), 돈후제(墩堠製)등에 관한 도설이 기술되어 있다.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성제와 병법에 대한 조선의 관심이 증대되어 『무비지』와 함께 널리 알려졌으며 우리나라 읍성축조에도 참고가 되었다.

반계수록(磻溪隨錄)

이 책은 조선 중기의 학자 반계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의 저술을 모은 것으로 조선후기 국가개혁안의 교과서라 평가받고 있다. 『반계수록』은 통치제도에 관한 개혁안을 중심으로 저술되었으며 전제(田制)와 병제(兵制)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권22 성지(城池)부분에서는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성제론이 잘 정리되어 있다. 유형원은 강항(姜沆, 1567~1618)이 언급한 중국과 일본의 성제를 인용한 후 조선의 실정에 맞게 성곽의 축성시기와 축성방법을 제시하며 읍성 중심의 축성방략을 강조하였다.

눌재집(訥齋集)

세종(世宗)에서 성종(成宗)때의 문신이자 학자인 눌재 양성지(梁誠之, 1415~1482)의 시문집(詩文集)이다. 1791년(정조 15) 정조의 명령에 의해 간행되었다. 권수에 정조의 어제서(御製序), 권말에 각신 이복원(李福源, 1719~1792)의 발문(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양성지는 "우리 동방은 성곽(城郭)의 나라이며, 유목민처럼 수초(水草)를 따라 행국(行國)할 수는 없으니, 그 성곽을 갖추는 일은 늦출 수 없습니다."라고 성곽정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1450년(세종 32) 올린 글에서 '성곽을 견고하게 해야 함'을 주장하면서 '경기(京畿)에서는 경성(京城)이 중요하고, 개성부(開城府)는 곧 전조(前朝)의 고도(古都)이며, 광주(廣州)에는 산성(山城)이 있고, 수원(水原)은 곧 남도(南道)의 요충'이라고 강조하였다.

대전회통(大典會通)

이 책은 1865년(고종 2)에 『대전통편(大典通編)』(1785) 체제 이후 80년간의 수교(受敎), 각종 조례(條例)등을 보안하고 정리한 조선시대 최후의 법전이다. 『조선경국전』이후 실시된 각종 조례를 종합하여, 1471년(성종 2)완성된 것이 『경국대전』인데 이후 『대전통편』을 거쳐 증보된 마지막 법전이 『대전회통』이다. 『대전회통』「병전(兵典)」성보(城堡)에 "숭성과 도성은 매년 봄과 가을로 병조(兵曹)에서 공조(工曹), 한성부(漢城府),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와 함께 순찰하여 그 상황을 보고하고 읍성, 산성에 대해서는 병마절도사가 무너진 곳을 순찰하고 수축할 곳을 자세히 적어 세초때마다 보고한다"라고 하였다. 읍성의 상태를 면밀히 순찰하고 무너진 곳을 견고하게 수축(修築)하는 업무는 지방행정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법전에도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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