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은위 정재화(1754~1790)는 1766년(영조 42)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의 둘째 딸인 청선공주와 혼인하여 정조의 매제가 되었습니다. 영조의 선택에 의해 조선왕실의 부마가 된 것입니다. 명문대가 영일정씨 출신이며 가사문학의 일인자로 좌의정을 지낸 송강 정철의 8세손입니다. 정재화 부부의 아들 정의는 수원판관과 화령전령華寧殿令을 지내며 수원과의 특별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후손들은 대대로 비장해 오던 흥은위 초상화와 왕실 하사품을 포함한
전시내용
01. 명문대가 출신의 흥은위 정재화
선조대의 정승이자 가사문학의 일인자인 송강 정철의 8세손 흥은위 정재화(1754~1790)는 1766년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 소생의 막내딸이자 정조대왕의 여동생인 청선공주(1756~1802)와 혼인하여 부마가 되었다. 조선왕실의 백년손님 흥은위 정재화의 출신 가문과 부마 간택 및 혼례 과정을 통해 조선시대의 부마제도를 이해한다. 또한 왕실 부마의 신분을 상징하는 귀중한 유물과 임금이 내린 하사품을 통하여 왕실의 일원으로서 흥은위 정재화의 위상을 살펴본다.
02. 흥은위 가문과 왕실의 교류
흥은위 정재화와 청선공주의 장남인 정의鄭漪(1781~1832)는 1795년 을묘년에 수원 화성행궁에서 펼쳐진 혜경궁홍씨의 회갑잔치에 청선공주와 함께 참석하였다. 또한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관리하는 현륭원령을 지냈고, 수원판관으로 임명되어서는 정조의 영정을 모신 화령전을 관리하는 화령전령도 겸하며 수원과 남다른 인연을 맺었다. 정의는 왕실과 관련된 행사의 종척집사宗戚執事 등을 지내며 왕실 일원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였고, 또한 혜경궁홍씨의 안부를 챙기는 일종의 승후관承候官 역할도 톡톡히 하였다. 특히 혜경궁홍씨와 정조 등을 포함한 왕실 인물들과 주고받은 특별한 한글편지를 통해 왕실 가족의 일상과 왕실 문화를 엿볼 수 있다.
03. 흥은위 가문의 생활문화
흥은위 정재화 후손들과 관련된 유물을 통해 부마 가문의 가계와 그 전승을 살펴본다. 또한 혼례와 장례 등을 비롯한 사대부가의 생활상을 들여다보며, 조선왕실 일원으로서의 위상을 지닌 부마 가문의 문화를 조명한다. 특히 대대로 전승되던 한글로 기록된 각종 문서와 한글 서책은 지체 높은 가문의 여성문화를 대변해 주는 규방 유물로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