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곽의 꽃’이라 불리는 세계유산 수원화성과 조선의 궁궐 화성행궁은 정조대왕과 백성들이 하나 되어 이룬 역사적 대업(大業)이며 그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역량이 총집결된 조선후기 문화의 결정체입니다.
이러한 수원화성의 가치는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지 25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면,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은 복원과정을 거쳐 꾸준하게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
전시내용
01. 수원화성의 아름다움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이를 보호하고자 새로운 도시 수원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신도시 수원의 팔달산을 중심으로 성곽을 쌓아 화성(華城)이라 이름하였으며, 이곳에서 자신의 개혁 정책을 펼쳐나가고자 하였다. 수원화성은 1794년 1월부터 1796년 9월까지 총 2년 9개월의 기간이 소요되었고 동서양의 과학기술이 반영된 성곽 축성술의 집성체이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입은 상처는 1970년대 후반에 실시한 수원성복원정화사업으로 회복되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수원화성은 1997년 한국 성곽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성곽의 꽃’으로 대내외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자연적 지세를 따라서 축성된 수원화성의 주변 경관과 더불어 공심돈과 봉돈 같은 혁신적인 시설물의 배치야말로 세계유산 수원화성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02. 화성행궁의 매력
조선시대 행궁은 국왕 행차 때 머물던 곳으로 또 하나의 궁궐이었다. 600여 칸에 이르는 화성행궁은 조선시대 최대 규모로 조성되어 정조대왕이 매년 사도세자 묘소를 찾을 때마다 머물던 곳이다. 220년 전 을묘년 수원행차 때는 혜경궁홍씨의 회갑잔치를 비롯하여 많은 왕실행사가 이곳에서 펼쳐졌다. 화성행궁은 국왕들의 행차를 맞이하는 왕실행사의 공간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수원유수부의 행정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이처럼 유서 깊은 이곳도 불행했던 역사의 격랑을 이겨내지 못하고 거의 모든 건물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1980년 후반부터 화성행궁의 복원을 열망하는 수원시민들의 마음이 하나 둘 모여 마침내 2003년에 복원되었다. 오늘날 화성행궁은 고풍스러운 궁궐의 매력으로 수원화성과 어우러져 세계인이 찾는 관광명소로 거듭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03. 위대한 기록과 수원화성
전 세계에 수원화성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수원화성 축성과정을 꼼꼼히 기록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이다. 조선시대 의궤는 국가에 큰 행사 및 대규모 건축이 있을 때 후세에 참고할 수 있도록 관련 사실을 글과 그림으로 총정리한 기록물이다. 1795년 정조대왕의 8일간 수원행차와 왕실잔치 등 다양한 행사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조선 최고의 성곽 축성과 신도시 수원 건설의 전 과정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 현륭원 참배를 위한 수원행차와 수원화성을 혜경궁 홍씨에게 보이기 위해 한글로 기록한 『뎡니의궤(整理儀軌)』 등의 의궤 3종은 수원의 역사적 위상과 정체성 확립에 있어서 절대적인 책이다. 220여년전 의궤 속의 글과 그림을 활용하여 수원화성과 수원행차 등을 시각화한 영상을 통해 위대한 기록물과 수원화성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