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박물관] 유물자료실 입니다.
top

김후 초상(金㷞肖像)

위치
수원화성박물관
시기
1796년 이후
분류
회화
재질
크기
92.4×61.2
지정현황
경기도유형문화유산 제291호
내용

김후金㷞(1751~1805)의 본관은 해풍海豊이고 자는 광중光仲이며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 김상걸金相傑(1727~1798)의 아들이다. 1771(영조 47) 정시무과에 급제 후 출사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790(정조 14) 수원중군에 제수되었고 1791년 당시 수원부 읍치邑治의 외곽을 호위하던 독성산성禿城山城의 중군을 역임하였다. 1793년에는 경기중군이 되어 경기지역의 모든 군사업무를 실질적으로 통솔하게 되는데, 수원화성 축성이 시작되기 딱 1년 전이었다. 정조가 의도적으로 수원 토박이 무반 가문 출신의 김후를 중용하였던 것이다. 17942월 화성성역 별감동別監董이 되어 화홍문, 방화수류정 등 시설물의 현장감독으로 886일간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축성이 끝나자 그 공을 인정받아 숙마 1필을 하사받았고 이후 황해병사를 거쳐 내금위장에 이르렀다.

김후 초상은 40대 중반의 모습으로서, 오사모에 흉배가 부착된 단령을 입고 있는 상복본常服本이다. 가슴에는 호랑이 두 마리가 수놓인 흉배가 부착되어 있어 무관 당상관임을 알 수 있다. 제작시기는 수원화성 축성을 마치고 그 공로를 포상받는 시점인 1796년 후반으로 추정된다. 김후 초상은 문관초상보다 숫적으로 드문 무관초상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가작佳作으로 평가된다. 김후 초상을 보관하던 함과 호수 그리고 호수함도 함께 전한다.

정조는 수원출신의 무관들을 수원화성 축성에 참여시켰는데, 해풍김씨 집안만 하더라도 김후 외에도 감동監董 김혁金爀과 김희金爔 등이 참여하였다.

 

채팽윤 응제시첩(蔡彭胤 應製詩帖)
규장전운(奎章全韻)
목록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전화번호
031-5191-4220
담당부서
학예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