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3월에 정조가 윤창윤(尹昌胤)의 딸을 후궁으로 맞으면서 보낸 납폐교서다. 정조의 비빈은 정비 효의왕후(孝懿王后, 1754~1821)를 비롯하여 후궁으로 원빈홍씨(元嬪洪氏, 1766~1779), 화빈윤씨(和嬪尹氏 1765~1824), 의빈성씨(宜嬪成氏, 1753~1786), 수빈박씨(綏嬪朴氏, 1770~1822)가 있다. 정조는 자식이 귀하여 효의왕후가 자식이 없었고, 첫 번째의 후궁인 원빈홍씨도 후궁이 된지 1년이 안되어 후사없이 죽었던 상황으로 화빈윤씨를 맞은 것이다. 국왕이 비빈을 맞이하는 국혼을 할 때는 전국에 금혼령을 내리고 삼간택을 하였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1780년 2월 28일에 초간택을 하고, 2월 30일 재간택을 했으며, 3월 10일에 윤창윤의 딸로 최종선택을 한 다음 3월 12일 자경전(慈慶殿)에서 가례를 행하였다. 이 문서는 바로 화빈윤씨와 가례를 행하기 전날 3월11일에 홍낙성(洪樂性)을 보내 납폐를 행하는 교서다. 가례를 올린 후 화빈에 봉해졌고 경수궁(慶壽宮)이란 궁호를 얻었다. 1781년 화빈윤씨가 임신하여 얻은 서장녀는 일찍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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