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金鍾秀, 1728~1799)가 쓴 장용영 현판을 탑본한 첩이다. 겉표지에 ‘장용영액(壯勇營額)’이라 묵서(墨書)되어있다. 좌측 하단에 대사마태학사(大司馬太學士)와 김종수정부인(金鍾秀定夫印)의 낙관이 찍혀있다. 정부(定夫)는 김종수의 자(字)이다. 서체가 장중하고 활달하여 장용영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임하필기』 에서 조선시대 관청에 걸린 19개의 명품 현판 중 하나로 소개되었다. 장용영은 1785년(정조 9) 왕권 강화와 국왕 호위를 전담하기 위해 설치한 장용위(壯勇衛)의 규모를 더욱 확대시켜 1787년 장용청(壯勇廳)으로 승격되었다가 이듬해 장용영으로 확대되었다. 1793년(정조 17) 1월에는 수원이 유수부로 승격되면서 서울에 있던 장용내영(壯勇內營)과는 별도로 장용외영(壯勇外營)이 설치되었는데, 수원유수가 장용외사(壯勇外使)를 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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