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축성이 진행 중이던 1794년(정조 18) 전국적인 흉년이 발생하여 정조는 그 해 10월 19일 대신들과 축성 진행여부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채제공을 비롯한 상당수의 대신들은 축성을 함으로써 구휼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공사를 진행하자고 하였으나 정조는 황정(荒政)이 우선되어야 할 상황이라고 판단하였다. 정조는 신하들과 논의한 지 10여일 후인 11월 1일 「유화성성역동공제신윤음(諭華城城役蕫工諸臣綸音)」을 내려 수원화성 축성을 중지시켰다. 정조는 이 윤음을 통해 축성은 언제든지 할 수 있고 10년까지 끌 수도 있으나 백성들은 잠시라도 굶주리게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국가사업보다 백성이 더 중요하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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