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박물관] 화성축성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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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수원화성의 아름다운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

화성축성실

화성축성실

화성 축성과 신도시 수원 건설을 주도했던 조선 22대 임금 정조 및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관련한 유물을 통하여 역사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모형 전시를 통해 축성 물자의 이동 경로와 재료에 따른 축성 방법을 살펴볼 수 있으며, 둔전과 시전의 재연을 통해 도시로 발전해 가는 조선후기 수원의 모습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세자 추숭과 수원부 읍치 이전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조선 22대 임금 정조대왕은 흔히 탕평군주이자 호학군주라고 일컬어집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 왕세자인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부 화산(花山)으로 옮겨 현륭원을 조성하고, 사도세자의 원찰로 용주사를 창건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화산 아래에 있던 수원부의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이전하여 행궁을 짓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호학군주로서 정조의 그림과 글씨 그리고 100책에 이르는 문집을 통하여 왕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살필 수 있습니다. 또한 정조의 생부 사도세자 관련 유물을 통하여 왕세자로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으며, 더불어 현륭원 천봉과 용주사 창건과 같은 정조의 사도세자 추숭사업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화성성역과 신도시 수원 건설

정조가 구상한 신도시 수원은 축만제, 만년제와 같은 수리시설과 대단위 국영농장인 둔전을 경영하는 생산기반 시설을 갖추고 동시에 시전을 마련하여 상업을 진작시키고자 하는 도시였습니다. 이를 위하여 1793년 수원부를 유수부로 승격시켰으며, 1794년부터 화성 축성을 시작하여 1796년 완공하였습니다. 화성 축성과정과 이에 관련한 공사종합보고서인『화성성역의궤』등을 통하여 수원화성의 우수성을 살필 수 있습니다. 또한 신도시 수원의 생산기반시설과 시전 설치 등을 통하여 경제적 자력을 확인 수 있습니다.

전시유물 보기

  • 홍재전서

    경기도유형문화재 제292호

    조선 22대 국왕 정조(正祖, 1752~1800)의 문집이다. 1799년(정조 23) 편집하기 시작하여 정조 사후인 1801년(순조 1)에 말년의 저술들을 덧붙여 재편집하고 1814년(순조14)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총 184권 100책이다. 정조 자신이 지은 시와 글뿐만 아니라 신하들의 응답 내용, 해당 관서의 기록에 대한 국왕의 최종 판결, 정조 재위 기간에 편찬된 서적의 해제집 등 다양한 내용의 글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수원화성과 관련되어 『홍재전서(弘齋全書)』 권63에는 정조가 직접 지은 성화주략이 실려 있는데, 이는 수원화성을 쌓기 위한 8가지 기본 방안이다. 먼저 성곽의 크기와 높이를 정하고, 성을 쌓는데 기본이 되는 주요 재료를 결정했으며, 해자와 참호의 규격과 터를 쌓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여기에 공사에 사용될 돌을 뜨고 다듬는 방법과 돌을 운반하기 위해 길을 내는 법, 그리고 물건을 운반하는 수레인 유형거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와 성벽을 쌓는 방식 등을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였다.

  • 수원화성 공사를 중지시키는 윤음

    경기도유형문화재 제347호

    윤음(綸音)이란 임금이 신하와 백성에게 내리는 당부나 지시 등을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법령과 같은 것이다. 전시된 윤음은 수원화성을 축성하는 공사를 잠시 중지하라는 내용이다. 정조는 1794년(정조 18) 전국에 흉년이 들자 대신들과 수원화성 축성공사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때 대부분의 신하들은 전국에서 모여든 일꾼들을 위해서 계속해야 한다고 하였으나, 정조는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 축성공사를 중지하는 윤음을 내렸다. 정조의 뜻은 대규모 국가사업보다 백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으로 정조의 애민 사상을 확인할 수 있다.

  • 김후 초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91호

    화성성역의 별감동이라는 직책으로 성역을 감독했던 수원출신 무관 김후(1751~1805)의 초상화이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무관의 반신상 초상화로 김후 장군의 40대 초반 모습이다. 이 초상의 복식은 오사모에 운문이 있는 단령을 입은 정장관복이다. 얼굴은 20도 가량 오른 쪽으로 돌린 좌안팔분면左顔八分面이다. 가슴에는 호랑이 두 마리가 수놓인 흉배가 부착되어 있어 무관 당상관임을 알 수 있다. 허리에는 1품을 지시하는 서대犀帶를 두르고 있다. 손의 포즈는 반신상이기 때문에 화면에는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아마도 공수자세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 1796년(정조 20) 화성성역이 끝난 후 정조는 김후에게 특별히 길이 잘 든 말 1필을 하사하였는데, 이때를 기념하여 이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초상화를 보관하던 궤도 함께 전한다.

  • 뎡니의궤

    이 책은 현륭원 행차와 혜경궁 홍씨의 탄신잔치, 수원화성 축성 등의 내용을 날짜 순서대로 기록한 한글 의궤다.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기록한 책을 제작하며 여기에 수원화성의 모습을 다양한 색으로 채색해 수록했다. 『뎡니의궤』는 1797년에 총 48책 48권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프랑스의 도서관에 13책만 남아 있다. 수원화성박물관 소장본은 프랑스에 소재한 책을 복제한 국내 유일본이다. 수원화성과 관련해 『화성성역의궤』에는 수록되지 않은 일부 시설물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며 기존 의궤에서는 보지 못했던 화성행궁의 주요 건물이 그려져 있어 수원화성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 이유경 전령

    이 문서는 1796년(정조 20) 6월에 한양에 있는 장용영 내영에서 화성성역소(華城城役所)의 도청(都廳) 이유경(李儒敬, 1747~1804)에게 보낸 전령(傳令)이다. 현륭원과 수원부 무사들의 활쏘기 시험에 시상품을 전달하면서 나누어 주라는 내용이다. 장용영은 1793년 장용위를 확대 개편한 국왕의 친위부대로 한양 도성의 내영(內營)과 수원유수부의 외영(外營)으로 구성되었다. 이유경은 대표적인 수원의 무관 가문 출신으로 1774년 무과에 급제하여 중요 군직에 등용되었다. 정조는 수원화성 축성을 위한 관청으로 화성성역소를 설치하였고, 공사 최고책임자인 총리대신 채제공과 현장 총괄책임자인 감동당상 조심태에 이어 도청 직에 이유경을 임명해 현장에서 실무 전반을 맡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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