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박물관] 유물자료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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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장 사진엽서

우시장에서 소를 사고 파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엽서다. 

한말육대가화병韓末六大家畵屛

근대 화단을 이끌었던 서화가의 작품을 모은 10폭 병풍이다. 병풍 오른쪽부터 청운菁雲 강진희(姜璡熙 1851~1919)의 고와전古瓦塼 임서,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기명절지도,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의 송학도와 어해도, 소운筱雲 김창환金彰桓의 화조도와 송록도, 무호無號 이한복(李漢福 1897~1940)의 기명절지도 쌍폭, 위사渭士 강필주姜弼周의 노안도蘆雁圖 쌍폭으로 구성되었다. 강진희, 안중식은 한 폭씩 나머지는 모두 두 폭씩 그렸다. 화제에 쓰여 있는 연대를 보면 병진(1916) 봄부터 정사(1917) 가을 사이에 그려진 작품들이다. 또 강진희, 김창식의 화제에는 범헌凡軒에게 증정한다고 되어있어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십인서화병十人書畫屛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까지 서화협회 등에서 함께 활동했던 서화가들의 글씨와 그림으로 꾸민 10폭 병풍이다. 병풍 오른쪽부터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晉 1853~1920), 우당愚堂 유창환(兪昌煥 1870~1935),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 1868~1933), 우향又香 정대유(丁大有 1852~1927), 석촌石村 윤용구(尹用求 1853~1939), 성재惺齋 김태석(金台錫 1875~1953),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 1862~1935), 석정石丁 안종원(安鍾元 1874~1951), 금강산인金剛山人 김진우(金振宇 1883~1950)의 작품 순이다. 이 병풍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은 1916년 조석진의 송학도이고, 그 다음으로 1921년 김규진의 묵매도, 1941년 김진우의 묵죽도 순서로 그려졌다. 또 오세창의 전서와 김태석의 예서는 모두 1949년에 쓴 것이다. 그림과 글씨를 같은 비중으로 번갈아가며 배치해서 만든 서화합작 병풍은 이 시기에 성행했던 제작방식이다.

한말육대가서병韓末六大家書屛

한말韓末 서예가 혹은 서화가로서 활동했던 6인의 글씨가 담긴 합작병풍이다. 병풍은 모두 12폭으로 한 사람이 두 폭씩 맡아서 썼다. 문인화와 글씨로 잘 알려진 구룡산인九龍山人 김용진(金容鎭 1878~1968), 중국 서풍을 토대로 글씨와 전각에 두각을 나타냈던 성재惺齋 김태석(金台錫 1875~1953), 모든 서체를 두루 구사한 석정石丁 안종원(安鍾元 1874~1951), 글씨와 전각 뿐 아니라 고서화의 감식에도 뛰어났던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각체에 조예가 깊었던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 1871~1937), 산수화와 글씨에 능했던 백련白蓮 지운영(池雲英 1852~1935)의 글씨가 담겨 있다. 글씨 합작 병풍의 예로 다양한 서체를 감상하고, 각 작가들의 개성을 엿볼 수 있다.

십이인서병十二人書屛

근대기를 대표하는 서예가 12인의 글씨를 병풍으로 만든 것이다. 병풍 우측에서부터 석촌石村 윤용구(尹用求 1853~1939),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 1862~1935), 우향又香 정대유(丁大有 1852~1927), 호정湖亭 노원상(盧元相 1871~?), 청운菁雲 강진희(姜璡熙 1851~1919),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백당白堂 현채(玄采 1856~1925), 성파星坡 하동주(河東洲 1879~1944),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 1846~1922),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 1868~1933), 만호晩湖 신동엽(申東曄 ?~?), 우당愚堂 유창환(兪昌煥 1870~1935)의 순서로 장황되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한 인물과 더불어 서병오, 하동주 등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작가의 글씨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증해파서화병贈海坡書畫屛

근대 유명 서화가들의 글씨와 그림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서화합작병풍이다. 서화협회 결성 당시 발기인이었던 우향又香 정대유(丁大有 1852~1927),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관재貫齋 이도영(李道榮 1884~1933)을 비롯하여 석촌石村 윤용구(尹用求 1853~1939), 창사蒼史 유진찬(俞鎭贊 1866~1947), 석운石雲 박기양(朴箕陽 1856~1932), 심석心石 정태석鄭泰奭, 그리고 구룡산인九龍山人 김용진(金容鎭 1878~1968), 유운幼雲 변종헌卞鍾獻, 난타蘭坨 이기(李琦 1856~1935)의 작품이 배치되어있다. 글씨와 그림을 한 폭씩 번갈아가며 구성하여 총 10폭을 이루었으며 매 폭마다 해파海坡를 위해 휘호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중향군현도衆香群賢圖

조선말기 이후 유행한 합작 형식의 그림으로 당대의 유명한 서화가들이 사군자 등의 소재를 한 가지씩 그려 완성했다. 화면 오른쪽 위에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 1871~1937), 석정石丁 안종원(安鍾元 1874~1951)의 화제가 있고,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 1897~1972)의 수선화 뿌리,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 1886~1965)의 불수감佛手柑, 관재貫齋 이도영(李道榮 1884~1933)의 매화, 수운首雲 김용수(金龍洙 1901~1934)의 영지, 묵로墨鷺 이용우(李用雨 1902~1953)의 바위, 심향深香 박승무(朴勝武 1893~1980)의 국화, 금강산인金剛山人 김진우(金振宇 1883~1950)의 대나무, 정재靜齋 오일영(吳一英 1890~1960)의 난초가 그려져 있다. 당대 서화가들의 교유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예다.

석란도石蘭圖

원용식(1898~1927)의 호는 해주海州,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제주 추자면 출신의 서화가이다. 일본 동경 우에노미술학교上野美術學校를 졸업하였고 중국 동북지방 봉천奉天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귀국한 뒤로는 호남·장흥을 비롯하여 서울에서도 활동했다. 이 그림은 바위틈에 자란 두 포기의 난초를 비단 바탕위에 수묵으로 그린 것이다. 빠른 붓놀림에 의해 즉흥적으로 그린 듯 속도감이 드러난다. 발묵이 자연스럽고 특히 난엽을 날렵하게 표현하였는데 해강 김규진의 묵란법을 계승한 듯 보인다.

사군자도四君子圖

충남 공주 출신 서화가 석연石淵 이경배(李慶培 1900~1960)가 1958년에 그린 사군자도이다. 전반적으로 청대 서화가의 화풍이 연상되는데 특히 오창석吳昌碩의 화법을 사사받았던 영운穎雲 김용진(金容鎭 1878~1968)의 화풍과 거의 흡사하다. 끝을 뭉툭하게 표현한 난엽蘭葉, 기교를 배제한 듯 거칠고 질박한 필치가 두드러지고 제발에서도 김용진의 서풍이 드러난다. 내용은 송 진여의陳與義, 명 허계許繼 등의 시를 쓴 것이다. 석죽을 그린 폭 제발을 통해 기해년(1959) 송원松園 박충식朴忠植이 동정東正 혜일慧日 스님에게 근증謹贈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경배는 조선미술전람회에 1929년의 8회부터 11회까지 사군자로 출품한 뒤 입선하였고, 이후에는 서화협회전에 출품하였다. 1930년에는 전주공회당에서 변관식과 2인전을 개최한 이력이 있다.

유란도幽蘭圖

황용하(黃庸河 1899~?)의 본관은 설성雪城이며 자는 윤중允中, 호는 미산米山·등운騰雲이다. 사군자를 주로 그렸다. 황씨 4형제 서화가 중 막내로 주로 형제들과 함께 작품 전람회를 개최하였는데 1925년에는 황경하와 함께 일본 동경에 건너가 그림 판매를 하고,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에는 1925년 제4회를 시작으로 11회까지 꾸준히 출품하였으며 4회에 《난병蘭屛》으로 4등상을 받았고, 제6회 《묵국》, 제10회 《석란》으로 각각 특선을 받았다. 이 그림은 황용하가 바위 틈에 피어난 난초를 그린 것이다. 윤묵潤墨을 사용하여 돌의 질감을 섬세하게 표현하였고, 난엽은 길고 힘차며 한 꽃대에서 여러 송이가 피는 혜란蕙蘭을 그렸다.

죽헌정사竹軒精舍

허백련(許百鍊 1891~1976)의 자는 행민行敏, 호는 의재毅齋·의재산인毅齋山人·의도인毅道人이며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초년시기 당시 진도에 유배 중이던 무정茂停 정만조(鄭萬朝 1858~1936)에게 한문을 배웠는데 이때 ‘의재’라는 아호를 받았다. 1911년 이후에는 진도 운림산방에서 허련의 아들 미산米山 허형(許灐 1862~1938)에게 본격적인 그림 수업을 받았다. 이 글씨는 허백련이 ‘죽헌정사’라는 당호를 쓴 행서 편액이다. 비백과 농담이 어우러져 원숙미가 드러난다. 허백련은 작품에 사용한 낙관을 기준으로 제작 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 1951년 회갑을 맞은 후에는 주로 ‘의도인’의 호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서 칠언대련行書 七言對聯

송기면(1882~1956)은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학자·서화가로서 전북서단의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송기면의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군장君章이며 호는 유재 裕齋이다. 전주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현대 서예가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의 부친이다. 초년에는 이정직李定稷의 문하에서 문장·서화를 두루 배웠고, 만년에는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학문적 기반을 형성했다. 글씨는 왕희지王羲之·미불米芾·동기창董其昌의 필법을 따랐으며, 임헌회任憲晦의 신도비명을 비롯한 많은 비문을 썼다. 이 필적은 왕희지의 고법古法을 바탕으로 당 구양순의 서풍을 따른 행서로 고아하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智水仁山開別境 精金美玉有斯人 지혜로운 물과 어진 산이 별경을 펼치니 맑고 아름다운 금옥 같은 인품이 이 사람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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