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박물관] 유물자료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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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남서첩李少南書帖

회동서관에서 발행한 이희수(李喜秀 1836~1909)의 서첩이다. 상·하 2책으로 되어있다. 전서와 예서, 크고 작은 행서, 초서로 「천자문千字文」 등을 옮겨 썼다. 서첩 말미에는 이희수의 약력, 글씨 관련 일화, 서첩의 발간경위 등을 적은 김규진金圭鎭의 지문識文이 있다. 이희수의 자는 지삼芝三, 호는 소남少南·경지당景止堂,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외숙부이자 스승이다. 산수화와 난·대나무 그림에 능하였고 어린 나이부터 여러 서체를 모두 잘 썼다고 전해진다. 평양지역의 서단에서 당대의 명필로 불리었다.

묵란 쌍폭墨蘭 雙幅

박일헌朴逸憲이 2폭으로 나누어 그린 묵란도이다. 각 폭 화면의 난포기를 상하로 나누어 배치하였고 농묵으로 굵고 힘찬 난엽을 표현하였다. 상단 제발에서 의측欹側 없는 박일헌 특유의 행서풍을 볼 수 있다. 박일헌은 함경북도 명천군 출신으로 호는 수연壽硯이다. 소년시절부터 시서화에 뛰어났다고 전한다. 경원군수慶源郡守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해행 칠언구楷行 七言句

지창한(池昌翰 1851~1921)의 호는 백송白松, 본관은 충주忠州이다. 1900년 정3품 경부警部 서무국장을 역임하였다. 함경도 출신 지창한은 청淸 하소기(何紹基 1722~1840)의 필체를 잘 썼으며, 그림은 수묵문인화풍으로 물고기와 게를 잘 그렸다. 이 작품에서도 하소기 서풍의 면모가 보인다.

분송도盆松圖

청운 강진희가 옅은 먹으로 노송의 기운이 드러나는 소나무와 주전자를 그린 것이다. 화제로 쓴 ‘공부하는 선비의 취미로 하는 일[書生餘事]’을 통해 여기餘技 삼아 하는 분재 가꾸기와 다도茶道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고리가 달린 긴 화분에는 전서로 ‘장춘長春’이라 쓰여 있고, 주전자에는 대나무 무늬가 담담한 필치로 표현되어 있다. 강진희는 이름으로 璡熙·晉熙를 썼는데 여기에는 낙관 [강진희인姜晉熙印]이 찍혀 있다.

묵죽도墨竹圖

허백련(許百鍊 1891~1976)의 자는 행민行敏, 호는 의재毅齋·의도인毅道人이다. 우리나라 전통 남종화를 철저히 계승한 화가로서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상하면서 각광을 받았다. 만년에는 전라남도 광주에 정착하였고 서화교육과 교유를 목적으로 한 연진회鍊眞會를 발족시키는 등 호남지역 화단 발전에 힘썼다. 이 그림은 허백련 69세 때의 노년작으로 광주 무등산에 위치한 개인 화실인 춘설헌春雪軒에서 그린 것이다. 화면 왼편의 화제에는 원나라 오진(吳鎭 1280~1354)의 시 「화죽畵竹」을 적었다. 화면 오른편의 그림에는 대나무와 바위를 함께 배치하였다. 죽엽은 붓을 천천히 운용하여 그 윤곽선을 구불구불하게 표현하였다. 죽간의 마디는 살짝 휘어져 있으며, 죽절을 죽간의 굵기, 형태와는 상관없이 도식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허백련의 묵죽화풍은 주로 호남지역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묵죽화양식의 주류를 이루었다.

천심죽도千尋竹圖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는 인물·산수·화조·영모 등 다양한 화목의 그림을 그렸고, 치밀한 묘사가 두드러지는 초상화·역사인물화 등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던 화가이다. 특히 21세에 서화미술회 화과에 편입학하여 1915년 졸업 후 서과에 다시 편입하며 필력의 기량을 다졌다. 작품 활동에 아울러 후소회後素會, 조선미술원朝鮮美術院, 이묵헌以墨軒 등을 개설하며 후진 양성에도 관심이 높았다. 이 그림은 김은호가 그린 묵죽도이다. 간결하게 그린 대나무와 죽순을 배치하였고, 제발은 소식蘇軾이 지은 「초만척장차운답지稍萬尺長次韻荅之」 중에서 썼다. 죽엽에서 김진우의 화풍이 드러난다.

현죽도懸竹圖

사군자 화가인 송은松隱 이병직(李秉直 1896~1973)이 절벽에 매달린 대나무를 그린 작품이다. 하단의 제발은 원말元末 장우長羽의 시 「제고우양맹재화죽題故友楊孟載畫竹」이며 경오(1930) 중춘仲春 상완上浣(1일~10일)에 완성했다고 되어 있다. 이병직은 김규진이 창설한 서화연구회의 1회 졸업생이었다. 김규진의 영향을 받아 묵죽화에 주력하게 되었고 조선미술전람회에는 2회부터 10회까지 출품한 가운데 대부분 대나무를 소재로 출품했다. 1923년에는 고려미술원高麗美術院에서 김은호와 함께 그림을 지도하였고, 해방 후 1953년경 발족된 ‘금란묵회金蘭墨會’에서 김용진金容鎭, 김윤중金允重, 이상범李象範, 황용하黃庸河 등과 교유를 나누었다.

세죽도細竹圖

정재靜齋 오일영(吳一英 1890~1960)은 금석학에 조예가 깊었던 오세창의 조카이다. 1911년 서화미술회에 입학하여 조석진, 안중식에게 전통 화법을 배우고, 1914년 제1기생으로 졸업하였다. 1920년에는 이용우(李用雨 1902~1952)와 함께 창덕궁 대조전 벽화제작에 참여하여 《봉황도鳳凰圖》를 그렸다. 서화협회의 정회원이며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는 <청장사위靑嶂四圍> 산수도를 출품하였다. 초기에는 조석진, 안중식의 화풍을 반영한 채색산수도를 많이 그렸으나 말년에는 사군자화에 주력하였다. 이 작품은 오일영이 특별한 화제 없이 대나무를 소략하게 그린 것이다. 가늘게 뻗은 대나무 굵기가 오죽烏竹을 연상케 한다. 화면 하단에 ‘정재靜齋’라고 쓴 뒤 [오일영인吳一英印], [정재靜齋]낙관을 찍었다.

묵죽 10폭병墨竹 十幅屛

김진우(金振宇 1883~1950)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직후까지 활동하며 대나무를 전문으로 그린 서화가이다. 강원도 영월 출생으로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군협君協, 호는 일주一州·금강산인金剛山人이다. 김규진이 창설한 서화연구회에서 그림 수업을 받았으며 1925년 『동아일보』 신년 휘호와 1926년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후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특히 조선미술전람회, 서화협회전람회의 출품작을 주로 대나무로 선보여 묵죽화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그림은 신사(1941) 중춘仲春, 김진우 59세에 그린 것이다. 농묵과 담묵의 대비를 조화롭게 구성하였고, 중봉세를 이용하여 그린 죽엽을 화면의 중하단부에 대치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 화제 글씨의 필력과 그림의 기량이 충만한 작품이다.

석로죽수도石老竹壽圖

해강 김규진은 서법을 기본으로 하여 사군자, 화훼, 산수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렸 다. 그 중 묵란과 묵죽을 즐겨 그렸는데 해강풍의 묵죽화를 유행시킬 정도로 화 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그림은 오래된 바위 사이에서 하늘을 우러러 자라난 대나무를 그린 것이다. 바위에 자란 이끼를 태점으로 표현한 듯 보이며 화면 가득 대나무 잎을 채워 그렸다. 해강 특유의 예서로 ‘석로죽수石老竹壽’라 쓴 뒤 두인 [천람天覽]과 [김규진金圭鎭], [해강海岡] 낙관을 찍었다.

묵죽 쌍폭墨竹雙幅

석운石雲 박기양(朴箕陽 1856~1932)이 묵죽을 쌍폭으로 구성한 그림이다. 첫 폭에 우죽雨竹을 배치하여 먹물의 농담으로 죽엽의 음영을 표현하였고, 다른 폭에는 하늘을 향해 뻗어자란 앙죽仰竹을 그렸다. 하단에는 세죽細竹을 함께 배치하였다. 말미에 ‘박생석운朴生石雲’이라 쓰고 [박기양인朴箕陽印], [석운石雲]이라고 낙관을 찍었다. 박기양은 행서 외에 묵죽화에도 뛰어났는데 주로 단아하고 여유로운 화풍을 선보였다. 1918년 서화협회 창립 당시의 고문으로 활동하였고 조선미술전람회 평의원으로 지내며 서화계 활동을 이어나갔다.

죽군석우도竹君石友圖

석촌石村 윤용구(尹用求 1853~1939)는 해서와 행서 글씨에도 다작을 남겼지만 그림에도 관심이 깊었다. 특히 난초와 대나무를 괴석怪石과 한데 어우른 그림을 선보였는데 곡선과 직선 형태의 다양한 형상을 지닌 괴석도 많이 그렸다. 이 그림은 직선이 강조된 괴석과 그 틈에서 자라난 대나무를 그린 것이다. 제발은 진광택陳光澤 집에 보관되어 있는 소동파의 대나무와 돌 그림에 대한 주희朱熹의 발문跋文을 행서로 옮겨 적은 것이다. 이 그림은 앞서 소개된 윤용구 《난죽병》 제8폭의 그림과 같아서 여러 벌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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