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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金聲根 1835~1919)은 본관이 안동安東, 자는 중원仲遠, 호는 해사海士이다. 1862년(철종 13) 정시문과 병과 급제 후 공조·형조·이조·예조 등 각 판서직을 역임하였다. 서화에 조예가 깊었는데 북송 미불米芾 서풍에 영향을 받은 활달한 필치의 행서를 잘 구사하였다. 이 글씨는 김성근이 중국 육조시대 양梁나라 유협(劉勰 465~521)이 엮은 시문 비평서인 『문심조룡』 「정세定勢」 등을 행서로 쓴 것이다. 쾌속한 필치와 강약의 변화를 준 필선처리로 활달하고 강렬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제10폭에 쓰여있는 ‘갑신甲申 유하榴夏’는 1884년 음력 5월로 김성근이 50세 되던 해이다.
정학교(丁學敎 1832~1914)가 10폭에 걸쳐 송宋 장자(張鎡 1153~?)가 지은 「계산기영桂隱紀詠」 등의 오언절구를 옮겨 쓴 행서 필적이다. 정학교는 점획의 태세太細와 장단長短을 주어 부드러운 운필로 구사한 행초가 독특한데 이 작품에서도 정학교 특유의 서풍을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 폭에 몽인夢人 정학교丁隺喬라 쓴 뒤 [정학교인丁隺喬印], [몽중몽인夢中夢人] 인장을 찍었다.
김석준(金奭準 1831~1915)의 자는 희보姬保, 호는 소당小棠이다. 부친은 역관譯官인 계운繼運이며, 김석준도 역과에 올라 벼슬이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1804~1865)에게 시를 배웠고, 김정희로부터 서화 지도를 받으며 서예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북조北朝 예서를 잘 썼고, 해서는 안진경체를 주로 썼다. 이 필적은 김석준이 송나라 육유(陸游 1125~1210)의 시 「북창한영北窓閑詠」을 전서로 쓴 것이다. 등석여(鄧石如 1743~1805) 서풍을 바탕으로 한 중후한 필세가 돋보인다. 古琴百納彈淸散 名帖雙鉤搨硬黃 낡은 거문고 백 번 기워 맑은 산조散調를 타고 이름난 법첩 쌍구로 떠서 경황지硬黃紙에 베끼네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중장통(仲長統 179~220)의 「낙지론」을 쓴 병풍이다. 추사 김정희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이하응의 행서로 제1폭 상단에 [득주중취得酒中趣] 주문방인 1과가 찍혀있고, 8폭 말미에 [석파石坡][대원군장大院君章] 낙관이 각각 찍혀있다. 특히 ‘노석老石’이라 쓴 관지를 통해 노년작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하응은 추사 김정희의 서맥을 이은 제자로 추사 서풍을 그대로 추종하다가 노년에는 이를 자기화시켜 개성적 서풍을 이루었다. 그림에서는 서예적 기법을 묵란화에 응용시켜 독특한 화풍을 형성하였다.
위당威堂 신헌(申櫶 1810~1884)이 대련 형식으로 쓴 행서 칠언시이다. 대련 형식은 청대에 유행하였는데 조선에서는 18세기 후반부터 추사 김정희,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가 활동하던 시기에 많이 제작되었다. 이 글씨는 신위, 김정희 서풍을 바탕으로 한 신헌 행서의 전형을 보여준다. 첫 폭의 두인頭印은 [유유여불진실留有餘不盡室]이고 말미에 ‘도봉백화산인道峰百花山人’이라 쓴 후 [신관호인臣觀浩印], [동이지인東夷之人] 낙관을 찍었다. [동이지인]은 『근역인수』 신헌 조에 수록되어 있으며, 새김은 다르나 추사도 애용하던 인장 중 하나이다. 玉杯湛露歌三雅 繡幙圍香讀六朝 道峰百花山人 옥 술잔에 이슬 담아 삼아(雅雨·雅魚·雅女)를 노래하고 수 놓은 장막에 향 피우며 육조의 글을 읽는다 도봉백화산인
허련(許鍊 1809~1892)은 전라남도 진도珍島 출신의 서화가로 자는 마힐摩詰, 호는 소치小癡이고 이명은 유維다. 초년에 해남 대둔사의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를 만나 지도를 받았고 이후 추사 김정희의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받았다. 김정희의 지도 아래 중국 북송대 미불(米芾 1051~1107)을 비롯하여 원말 황공망(黃公望1269~1354), 청대 석도石濤 등을 배웠으며 이를 바탕으로 남종 문인화풍을 익혀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였다. 교우 관계를 가진 인사들로는 신헌申櫶, 정학연鄭學淵, 이하응李昰應, 민영익閔泳翊 등이 있다. 만년인 1856년(철종 7)에는 진도로 귀향하여 화실인 운림산방雲林山房을 마련해 서화에 몰두하였다. 이 행서에는 추사의 영향이 잘 나타나 있다. 아래쪽에 손자 허건(許楗 1907~1987)의 관기觀記가 있다. 梅花一樹鼻功德 疏雲古木蒼蒼筆 매화나무 한 그루는 후각에 도움 주는 공덕이다 성긴 구름 사이의 고목은 푸르른 필세요
1967년 수원비행장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게리헬쎈이 찍은 사진이다.
1967년 수원비행장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게리헬쎈이 찍은 사진이다.
1967년 수원비행장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게리헬쎈이 찍은 사진이다.
1950년대 미군 마빈이 수원을 방문하여 촬영한 사진이다.
수원시 문화공보실에서 1976년 9월에 발행한 새마을화보다. 추석을 전후하여 소비자보호운동의 일환으로 부정계량행위를 근절하는 캠페인을 소개하는 등 수원지역의 행사들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1957년에 간행된 수원시 전도다. 지도 밖으로 '별표소주', '단골서점', '중앙여관' 등의 상호와 주소가 표기된 광고가 40여 개 실려 있다. 또한 지도 우측 하단에 각 기관업체의 명칭과 주소가 적힌 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