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박물관] 유물자료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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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균 그림 부채 潘庭筠扇面

1766년(영조 42) 동지사 일행의 부사副使로 연행길에 올랐던 김선행金善行(1716~1768)이 청나라의 젊은 선비인 반정균으로부터 선물받은 그림 부채다. 화면 중앙에 고아한 품격의 묵매墨梅가 그려져 있고 좌측 상단에 화제가 쓰여있다. 김선행은 1756년(영조 32) 수원부사 재직시에 는 경내의 흉년으로 농민들의 양곡이 떨어져 폐농지경이므로, 창고에 남아 있는 향미餉米를 나누어주도록 상소하였다.

회장저고리 回裝襦

구성이씨 묘에서 수습된 것으로 소렴의小斂衣로 사용된 회장저고리다. 깃과 섶, 겨드랑이 무, 끝동 등에 다른 색의 장식을 했다. 겉감으로는 운문단雲紋緞을 하고 안감에는 명주를 사용한 겹옷으로 전체적으로 연화문단을 사용하였다.

스란치마 裳

구성이씨 묘에서 출토된 스란치마다. 스란은 궁중이나 양반가 부녀자의 의례용 치마에 장식한 금박金箔 또는 금직金織의 단을 말하며, 스란치마는 치맛단을 금박으로 수놓아 장식하고 겹으로 만들어 입으면 발이 보이지 않는 폭이 넓고 긴 치마를 말한다.

장저고리 襦

여흥이씨 묘에서 2m 거리를 두고 또 다른 무연고 회곽묘가 발견되었다. 명정에는 ‘유인구성이씨지구孺人駒城李氏之柩’라고 쓰여 있어 무덤의 주인은 구성이씨이며 부군의 관직이 9품인 사대부가 부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성이씨 무덤에서는 약 40여 점의 복식유물과 10여 점의 명기류가 출토되었다. 저고리襦는 치마와 함께 입는 여성의 대표적인 웃옷이다. 구성이씨묘에서 수습된 장저고리는 화문단 겉감과 명주 안감으로 구성되고 겨드랑이 아래에 옆트임이 있다. 구성이씨 장저고리는 거들지가 달리거나 화려한 금선단金線緞이나 화문단 장식이 있어 의례복 성격을 지녔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수바늘꽂이

2010년 5월 옛 수원지역이었던 오산 가장2산업단지에서 무연고 회곽묘가 발견되었다. 명정에는 ‘의인여흥이씨지구宜人驪興李氏之柩’라고 쓰여 있어 묘주는 여흥이씨이며 당시 부군의 관직이 6품인 사대부가 부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수바늘꽂이는 관 내부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매우 드문 예에 속한다.

장옷長衣

2010년 5월 옛 수원지역이었던 오산 가장2산업단지에서 무연고 회곽묘가 발견되었다. 명정에는 ‘의인여흥이씨지구宜人驪興李氏之柩’라고 쓰여 있어 묘주는 여흥이씨이며 당시 부군의 관직이 6품인 사대부가 부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옷長衣은 치마저고리를 입은 후 겉에 입는 조선시대 여성의 가장 대표적인 외출복이다. 여흥이씨 묘에서는 모두 3점의 장의가 수습되었는데 그 중 대렴의大斂衣로 사용된 옷이다. 명주로 사용된 겉감과 삼베 안감 사이에 솜을 두어 누볐다.

심능종 인장 沈能種 印章

심능종沈能種(1775~1827)의 본관은 청송이고 자는 화필華弼이다. 1801년(순조 1) 사마시에 합격하여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다. 정조 재위시절 벽파의 영수로 알려져 있는 심환지沈煥之(1730~1802)의 아들이다. 근래 심능종의 묘 이장 시 출토되었는데 인면印面에 그의 자인 ‘화필’이 새겨져있어 생전에 애용하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덕해 묘 출토유물 李德海墓出土遺物

서흥도호부사瑞興都護府使를 지낸 여주이씨 이덕해李德海의 묘를 1974년 4월 14일 이장할 때 출토된 것으로 장군병 1점 외에 백자명기 12점이 출토되었다.

정희린 묘갈 鄭姬鄰 墓碣

정희린(1532~1583)은 선조대(宣祖代)의 문신으로 자는 덕보(德甫)이며 대사헌 정유(鄭裕)의 장남이다. 음직(蔭職)으로 벼슬에 진출하여 사헌부감찰 등을 지낸 후 외직으로 나아가 경상도 의흥(義興)의 현감을 역임하였다. 묘갈은 아버지 정유 묘갈과 거의 동일한 양식과 재질을 갖추어 1587년(선조 20) 건립하였다. 앞면 대자(大字)와 뒷면의 작은 글씨 모두 한석봉(韓石峯)의 필적이다. 한석봉은 평소 묘비 글씨로 정서체(正書體)의 해서를 많이 썼는데, 정희린 묘갈의 작은 글씨는 행기(行氣)가 넘쳐나는 특징이 있다.

정유 묘갈 鄭裕 墓碣

정유(1503~1566)는 명종대(明宗代)의 문신으로 자는 공작(公綽)이고 호는 양진당(養眞堂) 또는 보진당(葆眞堂)이다. 성균관 생원 정오(鄭悟)의 증손이자 현감(縣監) 정수강(鄭守綱)의 아들이다. 1537년(중종 32) 문과 급제하고 관직에진출, 여러 요직을 거쳐 대사헌에 이르렀다. 묘갈은 화강암으로 만든 직사각형의 비신받침돌 위에, 윗면이 둥근 대리석 비신(碑身)을 세워 1587년(선조 20) 완 성하였다. 비신받침돌에는 복련(覆蓮), 연주(連珠), 안상(眼象) 등의 문양을 단아하게 장식하였다. 묘갈문은 서애(西崖) 유성룡(柳成龍 : 1542~1607)이 짓고 조선전기 최고의 명필로 알려진 석봉(石峯) 한호(韓濩 : 1543~1605)가 썼으며 전액은 전서(篆書)의 대가인 두암(斗巖) 김응남(金應南 :1546~1598)이 올렸음을 파악할 수 있다.

류의 정려문 柳誼 旌閭門

류태명의 증손자 호조참판 류의(1734~1799)의 정려문이다. 수원에 남아있는 정려문은 류태명과 류의의 정려문이 유일하다. 제작 당시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음각한 글씨가 아직도 선명하다.

류태명 정려문 柳泰明 旌閭門

류태명(1666~1716)의 자는 도휘, 호는 현산옹, 본관은 전주이다. 29세 때 별시(別試)에 합격하여 출사(出仕)하였고,여러 관직을 거쳐 우승지를 지냈다. 정려문은 나라에서 충신·효자·열녀 등 모범이 되는 사람의 행적을 널리 알리고자 마을 입구나 집 앞에 주로 건립하였다. 원래 호매실 택지개발지구내에 위치하였으나 수원박물관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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