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박물관] 유물자료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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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유서 先妣遺書

1755년(영조 31) 공인恭人 함안조씨咸安趙氏(1715~1756)가 죽음에 임하여 남긴 두 편의 유서다. 조씨는 청풍김씨 17세손 승노升魯(1716~1775)의 부인으로, 묘는 광주廣州 대왕면大旺面 궁촌宮村 갑좌甲坐에 남편과 합장되었다. 이 유서는 조씨가 남편이 죽은 이듬해에 쓴 것으로 2편(각 편은 한글본과 한문본이 짝을 이룸)으로 구성되었다. 이 유서는 청풍김씨 가문에서 후대에 귀감을 보이기 위해 소중히 간직해 온 것이다.

이집 시호교지 李鏶諡號敎旨

이집李鏶(1625~1691)에게 장숙莊肅이란 시호를 내린 교지다. 이집의 본관은 전주로 1657년(효종 8)무과에 급제하여 함경도와 황해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이서조 등 전주이씨 후손들이 대대로 수원에 세거하였다.

암행어사 관 暗行御史 關

관청 상호간에 보내는 관문서로 암행어사 총리사에게 보낸 것이다. 수원 영통리에 사는 오성묵吳性默을 천안으로 속히 내려 보낼 일로 문서를 보냈다. 말 두 마리를 역에서 지급받을 수 있도록 2마패를 관인 대신 답인했고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총리사가 직접 봉토를 열어 내용을 확인하도록 주문했다.

이서조 홍패 교지 李瑞朝紅牌敎旨

수원에 세거한 전주이씨全州李氏 이서조李瑞朝(1730~?)의 홍패 교지다. 홍패紅牌는 과거 시험 중 대과大科에 합격한 생원과 진사에게 주던 합격증서다. 이서조는 1790년(정조 14) 수원에서 치러진 별시別試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급제 당시 연령은 61세다.

이택선 호패 李擇善號牌

유학 이택선의 호패다. 수원부에서 발급한 것으로 호패 앞면에는 출생년도인 신유년申酉年을 표기했으며 뒷면에는 호패를 발급받은 해인 을유식乙酉式을 표기했다.

김중신 호패 金仲臣號牌

유학 김중신의 호패다. 호패는 조선시대에 16세 이상의 남자에게 신분 증명을 위해 발급한 것이다. 김중신 호패는 수원부에서 발급한 것으로 출생년도인 을유년乙酉年(1825)을 표기했으며 뒷면에는 거주지인 장안면長安面과 호패를 발급받은 경자식庚子式(1840)을 표기했다.

박유명 초상 朴惟明肖像

박유명朴惟明(1582~1640)은 본관이 상주尙州로 1620년(광해군 12)에 무과에 급제하여 서산군수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1623년(인조 1)에 인조반정에 참여하였으며, 그 뒤 당상선전관堂上宣傳官을 거쳐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고, 사후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이 초상화는 인조반정에 참여한 공으로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 되었을 때 공신상이다. 오사모에 구름무늬가 없는 단령을 입은 채 공수拱手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17세기의 전형적인 공신상 양식을 보여준다. 낮은 오사모 아래에는 붉은 선묘로 얼굴윤곽이 묘사되어 있고, 미간의 가는 세로 주름과 광대뼈가 두드러진 얼굴표현에서는 신중함과 더불어 무관다운 용맹함이 잘 표현되었다.

수원 화서동 마애삼존불 水原華西洞磨崖三尊佛

수원시 화서동에서 옮겨온 것이다. 삼존상은 본존 여래좌상과 좌우협시 보살입상으로 구성되었으며, 본존상의 머리 뒤쪽에는 원형 두광頭光이 표현되었다. 불신佛身 곳곳에는 채색한 흔적이 남아있고, 큼직한 이목구비에 미소를 머금은 듯한 표정은 원만한 인상을 주는 요소다. 협시 보살상이 착용한 삼산형三山形의 보관寶冠은 이 작품의 가장 큰특징이다. 과감하게 생락된 옷주름, 앙련仰蓮과 복련復蓮으로 이루어진 연화대좌의 소박한 형태와 세부적인 조각 수법 등에 비추어 볼 때 제작시기는 고려중기 이후로 추정된다.

팔달문 동종 八達門銅鐘

팔달문 동종은 1080년(문종 34)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1687년 경기도 수원부 만의사 대종으로 새로이 주조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만의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이며 1284년(충렬왕 10)을 전후하여 중창되고 충선왕 때 사세가 확장되면서 경기지방의 대찰이 되었다. 하지만, 조선후기 사세가 기울면서 여러 성보聖寶들이 수원화성과 인근 사찰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만의사 동종은 수원화성 건설 시 이전되었다가 근대에 이르러 팔달문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종의 윗부분에는 용뉴가 종신부鐘身部에는 보살입상과 화문花紋으로 표현된 4개의 유곽乳廓이 표현되었고, 상대上帶에는 범자가 쓰인 두 줄의 원형이, 하대下帶에는 보상화문寶相華紋이 둘러져 있다.

민무늬토기 無文土器

여기산 선사 유적 출토된 민무늬토기다.

구멍무늬토기 孔列土器

금곡동유적 내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된 구멍무늬토기다. 구멍무늬 토기는 아가리 아래에 일정한 간격의 구멍을 안에서 밖으로 뚫거나 누른 흔적이 있는 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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