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金㷞, 1761~1805)는 정조시대의 무신으로 본관은 해풍(海豊)으로 자는 광중(光仲)이며 증호조참판(贈戸曹參判) 김상걸(金相傑, 1727~1798)의 아들이다. 1771년 (영조 47) 정시무과에 급제한 후 출사하여 수원부를 비롯한 여러 관직을 거쳐 1793년에는 경기 중군이 되어 경기지역의 모든 군사 업무를 실질적으로 통솔하게 되었다. 이는 정조가 의도적으로 수원 토박이이 srlagn를 화성성역 시작 1년 전에 중용한 것이었는데, 김후는 1794년 2월 화성성역의 별감동(別監董)이 되어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성역이 끝나자 그 공을 인정받아 숙마(熟馬) 1필을 하사받았다 이후 황해병사를 거쳐 내금위장(內禁衛將)에 이르렀다. <김후영정>은 40대 초반의 모습으로서, 오사모를 쓰고 흉배가 부착된 단령을 입고 있는 상복본(常服本)이다. 가슴에는 호랑이 두 마리가 수 놓은 흉배가 부착되어 있어 무관 당상관임을 알 수 있고, 허리에는 1품임을 나타내는 서대(㓾帶)를 두르고 있다. 제작시기는 화성성역을 마치고 그 공로를 보상 받은 시점인 1796년 후반으로 추정한다. 문관 영정보다 수적으로 드문 무관 영정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본 작품은 화성성역에 실제로 깊게 관여한 인물의 후손들에 의해 거의 220년간 대를 이어 전해져 온 것으로, 영정을 보관하던 함과 군복에 착용하는 모자 장식인 호수(虎鬚) 및 호수함과 함께 2012년 수원화성박물관에 기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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